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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

차(tea)의 기원에 대하여

by 옐로우민트 2023.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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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문득 왜 인간은 차라는 걸 마시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차를 마시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차의 효능을 알고 마신 것일까? 오늘은 가끔 누구나 궁금해했을 것 같은 차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일반적으로는 중국이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 

 

차는 차나무의 잎을 가공하여 음료화시킨 것을 의미합니다.

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의견은 중국이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차나무는 중국의 서남부 지역인 운남, 귀주, 사천 등지가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 일대는 아열대기후 지대로 1년 내내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추위에 민감한 차나무가 생장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빙하기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되었지만 중국의 서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높아서 차의 생존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신농이 수백 가지의 풀을 먹다가 독에 중독되어서 정신을 잃고 어느 나무 밑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바람을 타고 푸른 잎사귀 하나가 신농의 입으로 떨어졌는데, 이 잎을 먹자 정신이 맑아지고 모든 독이 해독되었다."

 

신농이라는 사람은 B.C. 2500년경에 존재했었다고 전해지는데 농업의 신, 지혜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전설 속의 인물입니다. 신농이 실존인물이라고 한다면 차를 이용한 최초의 인물이 되는 것이고 이는 최소 5000년 전에 차를 이용했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 신농(神農) 중국 삼황(三皇) 중 하나로 흔히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라고 불립니다. 신농씨는 한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백초의 풀을 직접 맛보아 해독을 하였으며, 한의학의 최초의 저서로 유명한 '신농본초경'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져 오늘날 한의학의 창시자로 여겨집니다.

 

성은 강(姜)이라고 합니다. 마차와 쟁기를 만들고, 소와 말을 길들이고 사람들에게 불로써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왕인 강태공(姜太公)이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라고 전해집니다.

 

 

2. 초기에는 향신료로 사용

초기에 차는  후추 등의 향신료처럼 음식에 넣는 감미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약으로 이뇨와 거담에 쓰였다고도 합니다.  진나라 전에 문헌에 茶(차) 대신에 荼(도)가 대신 쓰였는데 이것은 씀바귀 즉 쓴 차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육우라는 사람에 의해 차를 마시는 방법이 집대성되었고 차가 다른 음식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문화로 자라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육우(陸羽,733년~804년)는 중국 당나라의 문인이며,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정리한 《다경》(茶經) 3권 등을 저술하였으며, 중국의 차문화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3. 차의 이름의 유래

중국이 차의 기원임을 나타내는 증거 중 또 다른 것은 바로 차 이름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차를 의미하고 있는 말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cha'와 'tea'입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차를 'tea'라 부르고, 한국, 일본, 러시아, 이란, 티베트와 같은 국가들에서는 'ch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각 나라별로 조금씩 다른 발음으로 쓰여지고 있긴 하지만, 결국 'cha'와 'tea'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cha'와 'tea'가 중국에서 차에 대한 방언이라고 합니다.

 

푸젠 성과 광둥 성은 차의 집산지로 중국 전역에서 만들어지는 차들은 이곳으로 모여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로를 통해서 차를 수입한 나라들은 광둥 성의 발음인 'cha'를, 바닷길을 통해 차를 수입한 서유럽 국가들은 푸젠 성의 방언인 'ti'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차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4. 차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차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동진시대의 상거가 쓴  [화양국지]에는 "주무왕 때 중국 남방 파촉지역에 향기 나는 차가 있다."와 "주나라 무왕에게 파촉지역의 차를 공납하였다."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파촉지역은 현재의 운남, 귀주, 사천 등지로 야생대차수가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지역입니다. 차를 공납하기 위해서는 차를 가공하여야 하므로 적어도 3000년 전에는 이미 차의 재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야생대차수는 아직 인간의 순화개량을 거치지 않은 나무가 자연에서 스스로 성장, 발육, 번식하여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수령이 오래된 대차수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인적이 드문 산림이나 산간 오지에서 생장합니다. 완전한 야생형, 재배형, 야생형과 재배형의 과도기형인 과도기형 야생대차수가 있습니다. 

 

 

5. 차의 소비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까지

 

차의 소비는 주나라 무왕 이후로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장강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중국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780년에 쓰인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적인 [다경]은 중국이 차를 주변국가에 알리게 된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경]은 당나라의 문인인 육우라는 사람이 기존의 서적들을 정리하고, 직접 차의 산지들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들을 수년에 걸쳐서 정리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이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이어서 당대의 차문화뿐만 아니라 당나라 이전의 차문화도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는 신라본기 흥덕왕 3년(828년)에 중국차가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대렴이 중국의 차를 가져온 시기는 육우가 다경을 편찬하고 차가 유행하면서 차문화가 꽃을 피우려고 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차를 마시는 습관과 문화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성행하였고, 고려시대에는 거리 곳곳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차의 소비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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